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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 - 계몽주의자, 리들리 스콧

[줄거리]

부조리한 권력과 야만의 시대, 14세기 프랑스.
 유서 깊은 ‘카루주’ 가의 부인 ‘마르그리트’는 남편 ‘장’이 집을 비운 사이,
 불시에 들이닥친 ‘장’의 친구 ‘자크’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한다.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른 ‘자크’는 ‘마르그리트’에게 침묵을 강요하지만,
 ‘마르그리트’는 자신이 입을 여는 순간 감내해야 할
 불명예를 각오하고 용기를 내어 ‘자크’의 죄를 고발한다.
 
 권력을 등에 업은 ‘자크’는 강력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가문과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장’은
 승리하는 사람이 곧 정의로 판정 받게 되는 결투 재판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장’이 결투에서 패할 경우,
 ‘마르그리트’는 즉시 사형에 처해지는 운명에 놓이게 되는데…
 
 단 한번의 결투가 세 사람의 운명을 가른다!

<스포일러성 리뷰>

한 고집불통의 초라한 사내와, 한 얄밉게도 잘난 기회주의적 사내와, 한 주체적인 여성에 관한 트로이카.

애석하게도 [듄]이 나온 날 함께 개봉하여, 어쩔 수 없이 다른 소비층을 공략 중인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지만, 영화관에서 이 작품을 고른 것은 결코 후회할 선택이 아니다.

"틀린게 아니라 다를 뿐"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젠더갈등이 불거지고, 성인지감수성은 한 인간의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잡은 이른바 "미투"의 시대다.

어쩌면 중세시대적 가치관을 담은 영화는 날선 비난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의도가 선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나이 많은 남성 감독이 찍은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라스트 듀얼]은 이를 정면으로 받는다. 오히려 중세의 가치관에 역설적으로 복수를 가한다.

[라스트 듀얼]은 아내는 남편의 재산으로 취급되고, 여성의 인권이라고는 만무하던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세 사람의 이야기를 각기 다른 관점으로 해석한다.

범죄를 당했다는 자, 범죄가 아니라는 자, 그리고 범죄를 밝히고 가족과 재산을 보존하려는 자. 

하나의 사건이지만, 막이 넘어가며 미묘한 차이들이 대사와 영상에서 확인된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본인에 입맛에 맞게, 즉 다르게 기억하는 인간의 본성때문이다.

이는 "라쇼몽 효과"의 플롯화라고도 볼 수 있는데, 하나의 사건을 토대로 개별적 입장의 인물이 각기 다른 인식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시대는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그 어떠한 물리적인 힘도, 권력도, 재산도, 사회적 위치도 그녀에게 손을 잡아준 곳은 없었다. 

그녀는 남편의 부속품으로서 살아갔고, 남편의 행위에 따라 생과 사를 오갔으며, 남편의 결과에 따라 본인과 자식의 인생도 크게 바뀌었다. 

 

다행히도 최악의 경우를 면했으며, 아마도 최선이었을 결과를 움켜쥐고 개선장군처럼 금의환향할 것만 같지만, 그것은 남편의 입장이다. 

어쩌면 마차에 묶여 교수대에 거꾸로 매달려진 그 자처럼, 일말의 주체성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던 그 곳으로 돌아가는 그 길이 화형보다도 비참했을 것이다.

카르주 (멧 데이먼)의 어머니(해리엇 월터)는 어두운 과거가 있었다. 어쩌면 진실을 충분히 밝힐 수 있는 시간도 있었지만 그녀는 살기위해 입을 닫고 과거는 가슴 속에 묻으라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당신은 살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감내해야 했다"고 안쓰러움 섞인 반박을 건네었던 마르가리타지만, 듀얼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얼굴은 본인의 시어머니의 얼굴과 닮아있었다.

 

이 영화는 그토록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동등한 영화적 3할을 마르가리타에게 쥐어주며 독립성을 강조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믿는 것이 시대가 바뀌는 순간 얼마나 편협하고도 무지한 것인지를, 당시 남성 성직자들의 비합리성과 맹목성을 통해 관객에게 강하게 경고한다. 계몽적인 영화다.

 

**

[프리 가이]에서 초고렙 고인물 여캐릭으로 나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이는 조디 코머. 

29세의 젊은 배우지만, 벌써부터 레베카 퍼거슨의 우아함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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