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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해외영화

[영화리뷰] <태풍이 지나가고> - 우리는 그것으로 괜찮다

줄거리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 채
 유명 작가를 꿈꾸는 사설탐정 ‘료타’는
 태풍이 휘몰아친 날,
 헤어졌던 가족과 함께 예기치 못한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아직 철들지 않은 대기만성형 아빠 ‘료타’
 조금 더 나은 인생을 바라는 엄마 ‘쿄코’
 빠르게 세상을 배워가는 아들 ‘싱고’
 그리고 가족 모두와 행복하고 싶은 할머니 ‘요시코’
 
 어디서부터 꼬여버렸는지 알 수 없는 ‘료타’의 인생은
 태풍이 지나가고 새로운 오늘을 맞이할 수 있을까?

 

<스포일러성 리뷰>

누구나 '찬란'하다고 일컫는 청춘을 주행하는 장본인으로서, 불안과 좌절이 많아지는 요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태풍이 지나가고>는 마치 감정적 조력자처럼 다가왔고, 인생의 선구자가 제시하는 선문답처럼 느껴졌다.

 

모든 식물이 화려하지는 않다. 할머니 요시코 역의 키키 키린은 꽃이 피지 않아도, 열매를 맺지 않아도 식물에 물을 주며 키운다. 마치 대기만성형 우리 아들 같다고 말하면서.

과거에 살고, 바람직하지 못하게 돈을 벌고, 그것마저 도박에 탕진하고, 전처를 염탐하고, 가부장적인데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료타는 관객에게 동정심을 자아내지도 못하는 남자다. 객관적으로, 지금은 '쓸모없는 인간'이다.

그런데, "그것이라도 괜찮아"라고 히로카즈 감독은 말하는 것 같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실패한 인생이라도 괜찮다는 싸구려 연민의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Even though"의 영화다.

小는 大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小는 無가 아닌 有니까 그것으로 괜찮다.  

볼넷이라도 노린다면 1루에 나갈 수 있으니까, 꾸준히 타석에 선다.

좁은 욕조라도 내 몸을 덥힐 수 있으니까, 꿋꿋하게 씻고 나온다.

오래된 카레라도 맛은 좋으니까, 두 그릇씩 먹는다.

소중한 것은 주위에 있지만 우리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돈다발로 생각한 것은 사실 종이박스 조각이었다. 비싸다고 생각했던 족자는 사실상 값어치가 없었다.

오히려 정말 가치있던 것은, 아무렇게나 신문지에 둘둘 말려 곁에 놓여 있던 벼루다.

실패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료타지만, 그렇다고 모든 구석이 실패일 리는 없다. 여기서 히로카즈의 공감능력을 엿보았다.

아버지 료타는 아들 싱고에게 '미즈노'의 운동화를 사주고 싶어하고, 맥도날드가 아닌 MOS버거를 먹인다.

싱고는 "아빠같은 사람이 되긴 싫다"고 말은 하고 있다. 그런데, 아빠로서의 료타는 싫지만 료타로서의 아빠는 썩 좋아하는 눈치다.

마치 뭉개진 떡도 진열대에서 곱게 포장되어 손님을 기다리는 듯이,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대다수에게 실패자로 남을지언정, 특정한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 있으니까.

소중한 장면을 시기에 맞게 움켜쥐고 있는 것,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렇게 현명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도, 이미 놓쳐버렸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괜찮다. 이제라도 알았으니까.

 

태풍이 지나가고 하늘은 더 맑게 개는 법이다.

우리는 그것으로 괜찮다.

 

 

키키 키린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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