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해외영화

[영화리뷰] <와일드라이프> - 정성일 평론가님과 함께한 라이브러리톡

줄거리

1960년 미국 몬태나, 14살 소년 ‘조’(에드 옥슨볼드)가 부모와 이사를 온다. 아빠 ‘제리’(제이크 질렌할)는
 산불 진화 작업 일을 하겠다며 위험한 곳으로 떠나고 ‘조’는 엄마 ‘자넷’(캐리 멀리건)과 단둘이 남는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두렵고 낯선 ‘자넷’과 ‘조’. 첫 눈이 내리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올까?

<와일드라이프>는  폴 다노의 감독 데뷔작이다. 배우자인 조 카잔과 함께 시나리오를 썼다.

 

리처드 포드의 저서 <Wildlife>가 원작으로, 시나리오는 폴 다노와 조 카잔 부부가 썼지만 원작의 대사는 모두 차용했다.

<스포일러성 리뷰>

이 영화는 <독립기념일>을 집필한 미국 현대소설의 거장 리차드 포드의 원작 <Wildlife>를 기반으로 한다.

 

리차드 포드는 미국인들이 살아가는 일상적 삶의 정수를 보여주는데, 이번 작품 역시 몬태나에 살고 있는 한 미국 가족의 이야기다.

 

원작을 읽고 폴 다노와 조 카잔 부부는 이례적이게도 시나리오를 시간 순서에 맞춰 차례차례 썼는데, 이것에 대해 조 카잔은 "<와일드라이프>는 '매일매일이 쌓여나가는 이야기'라며, 씬 하나가 끝나고 다음 씬으로 넘어가는 것은 마치 오늘이 끝나야 내일이 오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정성일 평론가에 따르면, 폴 다노는 오즈 야스지로와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특히 <동경이야기>, <만춘>으로 잘 알려진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홈 드라마 스타일의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정성일 평론가는 이 영화의 요점을 '가족'이 얼마나 연약하며,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를 보여주는 것에 있다고 본다.

마치 오즈 야스지로나 에드워드 양의 영화처럼 말이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로는, <와일드라이프>는 부모를 친한 존재에서 갑자기 이상한 존재로 느끼게 되는 그 순간을, 즉 어른으로의 첫 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을 찍고 싶어하는 영화라고 말씀하신 듯 했다. 

 

이 영화는 Joe, Jerry, 그리고 Jeanette이 이루는 한 가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제리는 가장으로서 골프장에서 청소부로 일한다. 그런데 변변찮던 벌이를 하던 직업마저 어느 순간 이어갈 수 없게 된다.

그는 몬태나의 산불 진화를 위한 파이어캠프에 자원하게 되고, 그 사건을 기점으로 제리의 가정에 많은 부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며 영화가 진행된다. 

정성일 평론가는 <와일드라이프>가 미국 사실주의 화가인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세계나, 다큐멘터리 사진의 거장 워커 에반스의 작품세계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폴 다노 감독은 우선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에서 평면성을 가져왔으며, "평면적 구도에서 무한한 복제로 대변되는 동일건물의 건축양식의 무미건조함. 그 무미건조함 아래에서 살아가는 미국인들의 고독함. 그 건물 자체가 미국인들의 풍경화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영화의 오프닝에서 투배사들의 로고는 소리없이 나타난다. 정성일 평론가는 이것을 두고 서사, 사건에 신경쓰지 말고영화의 디테일을 보라는 의미라고 했다. 

 

또한 이 영화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 혹은 에드워드 양의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숏을 찍을 때 'Fixed Camera'를 사용한다.

그리고 숏이 유사하지만 조금은 다르게 반복되는 '숏의 순환 구조'를 통해 장면에 의미를 부여한다.

 

영화의 시선은 아들인 조를 향해 있고, 우리는 조의 시선으로 부모인 제리와 자넷을 바라보게 된다. 이 영화는 마치 어른이 된 조가 어린 조를 회상하는 듯한 느낌이 이야기 속에 서려있는 것 같다.

눈치가 빠른 관객이라면 암전을 경험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가 진행되며 총 세번의 블랙아웃(암전)을 겪게된다.

 

제리가 해고당하던 날에 첫번째.

 

자넷이 조를 앞에두고 제리는 떠나려고 하는 것이라며, 관계를 안한지도 오래됐다고 말하면서 마치 조를 어른처럼 대하기 시작하는 그 대화가 끝나고 두번째.

 

자넷이 워렌밀러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코트를 되돌려주려 다시 들어갔다가 한참 뒤에 나와서 차에 탄 뒤에 세번째 암전이 일어난다. 

 

이 각각의 블랙아웃을 겪으며 조는 그 만큼씩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후 불쌍한 조에게 대자연이 감응하듯 눈이 오고, 눈이 산불을 진화하며 아빠가 돌아오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엄마는 엄마로서 이미 후퇴했고, 가정보다는 본인의 새 시작을 원한다.

 

함께 공놀이하던 첫 장면의 아빠는 어느덧 추잡한 어른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고, 더 이상 존경받지 못한다. 조의 가정은 황폐화되었다. 카메라는 집을 멀리서 비추고, 집의 벽은 조와 제리-자넷을 분할한다. 

 

정성일 평론가에 따르면 <와일드라이프>는 조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선과 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두 가지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한 화면에 세 사람을 함께 잡는 일이 처음과 끝, 단 두번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싱글 숏으로 잡아 개개인의 표정과 분리성을 강조한다. 표정을 강조한 이유는, 어떤 대사도 배우의 표정만큼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없다고 보던 '배우'이자 감독인 폴 다노의 성향이 드러난 것이다.

폴 다노와 조 카잔은 7년간 시나리오를 썼다. 아니나 다를까, 장면 하나, 대사 한 줄이 쉽게 쓰여지고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다.

 

"Ain't this a wild life?" 나랑 가장 가깝다고 느껴왔던 부모가 어느 순간 낯설고 이상한 존재로 다가오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그렇게 쉽게도 부서지는데, 우리의 삶은 쌓아온 믿음을 계속 배반해가는 거친 삶이 아닐까. 그리고 그 거친 삶을 살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CGV 명동씨네라이브러리에서.

 

 

ⓒ네이버영화, T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