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된 감독 노아 바움백이 이야기하는 결혼에 관한 모든 것. 파경을 맞았지만,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한 가족을 예리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스포일러성 리뷰>
이 영화는 결혼 이야기다. 그런데 흐름만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이혼 이야기에 가깝다.
다르게 본다면 자식의 양육권을 놓고 벌이는 법정 드라마가 될 수도 있고, 남녀간의 치정극이 될 수도 있다. 개인의 판단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노아 바움백 감독은 결혼이라는 불완전한 제도를 다룬다.
그리고 그 제도에 이용되는 인간과, 그 제도를 이용하는 인간의 모습을 각각 나타내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찰리(아담 드라이버)는 한때 격정열의에 휩싸여 사랑을 했고, 결혼으로 서로의 감정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이후 현실적인 문제와, 그에 따른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 남편의 외도와 같은 결혼생활의 어려움이 계속 되자 부부는 파경에 이른다.
둘은 변호인을 통해 이혼 절차의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제도에 의해 굴러갔고 그 제도란 것은 차갑다.
변호인은 숫자와 승소에만 신경을 쓸 뿐, 둘의 관계에는 정작 무관심하다.
서로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법정에서 무기로써 이용되는 상황은 참담하다.
사적인 공간에서는 본인들끼리도 자기 파괴적인 언쟁을 이어간다.
그들만의 비극은 세상이 보기에 먼 발치로 보이는 희극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들에게는 관조할 수 없을만큼 가까운 비극이었다.
그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둘은 '인간'적인 해결책을 강구한다.
제도에 이용당하는 인간에서 제도를 이용하는 인간으로, 그들은 변증법적인 발전을 이룬다.
인간이 만든 제도라는 것은 불완전해서, 제도 안의 인간은 물풍선에 구멍낸 것처럼 어떻게든 그 빈틈으로 빠져나오게 마련이다.
그 불완전한 제도(결혼)를 또 다른 제도(이혼)로 해결하려는 것은 상처를 다른 상처로 잊는 것과 같다.
마침내 찰리와 니콜 부부는 그 제도를 이용하되, 근본적인 해결책은 서로간의 타협과 이해를 채택했다.
성공적인 솔루션이었다.
둘에게 결혼과 이혼은 마치 영화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대척점을 가진 직선과도 같았다.
이 말은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따위의 관용어를 멋지게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끝이 있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니콜의 변호사 노라 팬쇼(로라 던)가 성을 내며 외친 장면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은 아빠에게 요구하는 것보다, 엄마에게 요구하는 것이 훨씬 많다. 엄마는 부모로써 완벽해야하지만 아빠는 무관심하고 서툴러도 세상이 용서해준다.
오히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이상적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유대교, 기독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엄마로 대변되는 성모 마리아는 완전무결한 존재였고 완벽한 인간이었다.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았고, 평생 동정으로 살았다. 그녀가 홀어머니처럼 예수를 기를 때, 남편은 하늘 위에 거주하면서 양육에 손톱만큼도 기여하지 않았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이 우리 사회가 기대해오던 바람직한 어머니상이다"
대사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하간 결혼이라는 제도는 여성에게 더 많은 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은 남자인 나로서도 마땅히 공감할 수밖에 없다.
물론 시대가 바뀌면서 가정 내 양육과 가사노동의 분할이 어느정도는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회적인 시선, "마땅히 그래야 함"의 기준, 헌신, 정절등의 항목들이 아직까지는 보수적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20세기>의 에비(그레타 거윅)가 촌철살인적 대사로 Gender Equality를 외치는 것처럼, <결혼 이야기>는 스칼렛 요한슨의 독백과 로라 던의 대사를 통해 사회의 젠더적 보수성을 날카롭게 다룬다.
니콜은 통용되는 당연함 속에서 참아오던 분노와 억울함 등을, 남편의 외도를 도화선으로 삼아 폭발시킨 것이 아닐까.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둘의 자기파괴적 언쟁장면, 혹은 스칼렛 요한슨의 2차례에 걸친 독백장면을 롱테이크로 잡은 쇼트를 보면서 정말 그들의 연기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완성도와 재미를 모두 잡은 영화가 아닐까싶다.
<아이리시맨>에 이어서, 넷플릭스 영화를 다시 한 번 메가박스 송파에서 관람했다.
좋은 영화를 지원하는 넷플릭스와 메가박스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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