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La verite), 2019
줄거리
자신의 회고록 발간을 앞둔 전설적인 여배우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
이를 축하하기 위해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가
남편 행크(에단 호크), 어린 딸 샤를로트와 함께 오랜만에 파비안느의 집을 찾는다.
반가운 재회도 잠시, 엄마의 회고록을 읽은 뤼미르는
책 속 내용이 거짓으로 가득 찼음을 알게 되는데…
“엄마, 이 책에는 진실이라고는 없네요"

<스포일러성 리뷰>
프랑스의 전설적인 배우 파비안느의 회고록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딸과 딸의 가족을 맞이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엄마로서, 할머니로서, 장모님으로서, 아내로서, 애인으로서, 그리고 대배우로서의 파비안느는 모두 다르다.
"I'd prefer to have been a bad mother and a bad friend but a good actress." (난 좋은 엄마나 좋은 친구보다는 좋은 배우가 되고싶어 했어) 이 대사 한 마디가 파비안느의 성격을 꿰뚫는다.
이 문장에서 중요한 부분은 시제다. 과거완료시제에서 과거의 일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녀는 예전에도, 현재도 좋은 배우(Good actress)다.
그렇지만 과거는 현재가 아니다. 황혼녘에 서있는 파비안느는 젊을 때의 그녀와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
그 다른점이 바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 아닐까 한다.

'워라밸' - 일와 삶의 균형. 파비안느는 그 밸런스가 무너져있었다.
이 영화는 일에 대한 사랑과 자식에 대한 책임감, 그 사이의 균형을 인생의 3분기에서 찾은 한 사람의 이야기다.

나는 일본인 감독 중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제일 좋아한다. 이 사람의 세심하고 따뜻한 시선을 좋아한다.
정형화된 장르물, 사나운 시각효과, 뇌를 거치지 않고 두 눈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 신파적인 한국영화와 자본에 잠식된 할리우드 몇몇 영화들은 관객을 지치게 한다.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처럼 청량하면서도 따뜻한 영화는 그럴 때마다 사람들에게 활력을 북돋아 준다.
고레에다의 영화는 첨예한 갈등을 찾기 힘들다. 그저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며 다큐멘터리처럼 영화를 풀어간다.
영화를 보는 중에는 이야기에 빨려들어가고, 영화를 보고 나서는 이야기를 곱씹고 생각하게 만든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외국인 배우를 주연배우로 기용했다.
개인적으로 고레에다 영화가 프랑스 영화처럼 담백하고 차분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번에는 말 그대로 프랑스 영화를 촬영했다.
프랑스 영화처럼 침착하지만, 유머와 사랑스러움을 놓치지 않았다.
아이들을 잘 다루는 감독답게, 아이의 시선 역시 이번 작품에서 빠뜨리지 않았는데, 손녀 뤼미르가 할아버지 거북이 피에르와 노니는 장면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무비쿡 시사회에 당첨되어, 19년 11월 19일에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관람했다.
주연배우와 감독이 너무 훌륭해서 개봉하면 찾아서라도 보겠다고 생각했는데, 개봉 전에 보게 되었다.
제 76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고레에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훗날 “이번 영화를 통해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면 다른 언어로의 작업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함께하고 싶은 매력적인 배우가 많다. 조만간 만나고 싶다”고 말하며 한국 배우와의 작업도 기대하게 했다.

딤머등이 켜지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토토(강아지)와 길을 걷는 파비안느가 비춰진다.
그 길에는 낙엽이 떨어지고, 파비안느가 코트를 입을만큼 쌀쌀하지만, 보고있자니 왠지 모를 따뜻함이 몰려왔다.
ⓒ네이버영화, T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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