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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국내영화

[영화리뷰] <박하사탕> - 개별적 죽음으로 설명하고 싶었던 것.

줄거리

20년만의 야유회가 열리던 날. 느닷없이 '영호'(설경구)가 나타난다. 그는 이미 실성한 모습이다. 의아한 눈길로 영호를 바라보는 친구들. 영호의 광기는 더욱 심해지고 급기야는 철교 위에 올라 울부짖는다. 거꾸로 가는 기차를 따라 시간을 거슬러 가면 영호의 과거가 펼쳐진다. 자살할 수밖에 없는, 구원 받을 수 없는 인간에서 점점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간 영호는 박하사탕 싸는 일을 하는 순임을 처음 만나 그녀가 건넨 박하사탕을 먹는다. 둘은 첫사랑을 느낀다. 박하사탕의 색깔과 맛 같은 첫사랑의 순수한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스포일러성 리뷰>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드디어 봤다. 왜 이창동이 문학적인 감독인지, 볼 때마다 느끼게 된다. 

또렷하게 나있는 기찻길을 따라 이야기는 진행된다. 하지만 거꾸로 거슬러 간다.

갑자기 야유회에 나타난 영호는 괴성을 지르고 이성을 잃은 채 철로위에 올라선다.

영호가 왜 자살을 하게 되었는지, 기찻길은 한 사람의 인생을 회귀하며 보여준다. 

박하사탕을 참 좋아하던 청년은 박하사탕의 순백의 색깔처럼 순수했다.

때묻지 않은 그의 영혼은 군화발에 짓밟히고, 광주에서 발사된 오발탄은 본인의 순수함을 잃게 만들었다.

손은 더럽혀지고, 사랑은 떠나갔다.

어느덧 이 사람은 순수함이 아닌, 구조적으로 불가피했던 상황으로부터 내면화된 광기와 폭력성에 지배된다.

의심과 외도로인해 가정은 파탄나고, 사기와 IMF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에마저 처한다. 

그가 갈 곳은 오직 하나, 가장 행복했던 과거일 뿐이다. 

유명했던 네이버지식IN의 답변이 기억난다.

어떤 아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과거인데, 어떻게 돌아갈 수 있냐고 물었다.

답변자는 과거보다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이 답변은 질문자를 포함한 수많은 네티즌의 추천을 받았고 감동을 주었으며, 아직까지도 동기부여의 글로 회자된다. 

하지만 영호의 상황에서도 저처럼 무책임한 위로와 격려를 건넬 수 있을까?

<개밥바라기별>에서의 황석영 작가의 말을 빌리면, 인생의 대부분은 충족된 시간들이 아니라 제도를 재생산하는 규율의 시간 속에서 영향받고 형성된다.

불가역적인, 불가항력적인 사회구조적인 비참함이, 당장 나 자신에게 안겨진다면. 개인이 처리할 방도는 없다.

영호처럼, 가장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목숨을 끊을 뿐이다.

단지 아버지의 세대, 단지 3~40년 전의 시대라고 생각했을 때, 이 영화가 이것보다 더 가슴아플 수는 없다.

그 시절, 인간은 조직의 구성원에 불과했다. 여성의 위치는 (굉장한 진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서포터 혹은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내 권리를 찾기 위한 몸부림은 반역행위로 간주되었다.

<화려한 휴가>에서는 이요원이 두돈반을 타고 확성기를 들고 다니며, '일어서라'고 외쳤다.

<브이 포 벤데타>에서는 침묵을 더 악랄하다고 보았다. 침묵하는 국민은 그에 맞는 수준의 정부를 갖게 된다고 했다.

Letum non omnia finit.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지는 않는다.

영호라는 개인은 생을 마감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지만, 남은 우리와 남은 사회에는 여전히 남은 숙제가 있다. 

*이런 부조리한 사회와 구조에서도, 결국 남는 것은 사람과의 기억이었다.

어디에서나 기억은 거기있는 사람과 함께 남는다.